어느 분신 사고를 보고

충주 연수동원룸 금영타운 ♥ 어느 분신 사고를 보고

  사람이 태어나면 결국은 죽음으로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다. 그러나 주변의 안타까운 죽음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고로... 자살로... 산업현장에서... 
   많은 사고 중에서 더 안타깝게 보는 것은 분신으로 인한 사망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생전에 화장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돌아가셨어도 그 불기운이 뜨거울 것을 걱정하셔서이다. 그런데 살아서 내 스스로 몸에 인화물질을 끼얹고 불을 붙일 때는 얼마나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할까? 정말 보통 사람이 할 것이 못된다.

글쓴이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내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집중 시키고 이슈화해서 나의 주장을 관철 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본인(또는 본인이 속한 집단)의 위기감을 너무 심하게 받기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나의 주장에 대한 사회 관심과 이슈를 꼭 이런 방법으로 이끌어 낼 수밖에 없는가?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이 없어도 정당한 주장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귀 기울여 주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나의 주장이 관철되더라도 이미 세상을 등진 나에게 관철된 주장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가장의 경우 남겨진 가족들은 어떡할 것인가? 남은 가족이 힘들게 생활할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한데 이런 가족은 누가 보살펴 줄 것인가? 역설적으로 글쓴이는 이러한 행위로 말미암은 사고에 대하여 사회적 이슈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인한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주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주장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너무 걱정이 된다.

 둘째 대화와 타협이 사회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나 개인에게 외부로부터의 변화나 압력으로 인하여 위기감이 왔을 때 이것을 대처해 나가기 위하여 오로지 외부의 변화나 압력을 거부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부에는 고쳐야 할 문제가 없는지 냉철히 들여다보는 한편 외부의 힘에 대한 협상력을 키울 방법을 찾아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요청사항만 전적으로 받아들여달라는 주장은 이제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외부의 변화와 압력에 적응할 방법을 찾아 빨리 적응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며 뭔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상생의 방법이라는 것이 너무 어려운 방법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