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순신 장군께서 고초를 겪으신 후, 원균이 해군력을 말아먹은 칠천량 해전에 배설이 있었다. 그는 조선 수군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원균의 모습을 보고 고뇌에 휩싸여 있었다. 배설, 그는 상관에 반항하는 객기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원균 밑에서 그나마 열심히 잘 싸우며 이 기록적인 패전에서 유일하게 공을 세우기도 했던 배설. 그러나 원균이 이틀 연속 대패를 당한 후에도 장수들을 불러모아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자, 그는 결심한다.
'오케이, 난 여기까지다.'
불가능은 불가능일 뿐. 배설은 가능한 상황에서만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음날, 조선 수군이 섬멸되는 지옥도가 펼쳐질 즈음 이미 배설은 전장을 신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12척의 판옥선과 120명의 부하를 이끈 그를 왜군 선단이 가로막았다. 배설은 아마도 수십 척, 최소 십수 척의 배를 물리치고 그중 8척을 격침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올리며 포위망을 뚫었다.
배설은 자신만 빠져나가기 위해 부하들과 배를 희생시키지 않고 모두를 지옥에서 건져냈다. 자기 휘하의 무기와 군사를 지키는 일도 공무원의 윤리다. 물론 다른 '공무원'의 사정이야 알 바 아니다. 허나 적어도 자기 일에는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도 윤리는 있다. '직장인의 윤리'가...
'나는 내 일만 한다. 단,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정말 칭찬받아야 할 일도 있다. 배설은 도망 중에 한산도에 피신한 조선 백성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왜군에 학살당할 운명이었다. 전시의 장수가 백성을 구함은 공무원의 윤리!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한 배설이지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할 일도 한다.
배설은 한산도의 피난민들을 모두 배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구조했다. 그 와중에 왜군에게 넘어갈 뻔한 군사시설과 군량을 불태우는 '업무'도 잊지 않았다. 이런 부하직원과 일하고 싶지 않은가?
5.
상관이 죽은 원균에서 살아 돌아온 이순신 장군으로 바뀌자, 공무원 배설은 불세출의 영웅에게 전함 12척을 안겨준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배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이놈이 말을 안 듣는 건 아닌데, 슬슬 눈치를 보며 굼띠게 행동하는 게 아닌가? 우리 충무공 장군 열받게시리...
난중일기는 배설의 모습을 '두려워했다'고 표현하는데 한문에서 이 표현은 '겁을 먹었다' 와는 조금 다르다. '우려했다'는 것에 가깝다. 배설은 충무공이 13척의 배로 왜군의 대선단에 도전하려 하자 이 양반 이거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 불가능은 불가능이다.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말이 될 때만, 또 내가 산다는 희망이 있을 때만이지. 아니 그런데 이놈들이 죄다 미쳤는지 이순신의 연설 한 번 듣더니 장수고 졸병이고 한번 해 보자고 한다.
'아 놔... 님들 정신 차리세요.'
그렇다고 배설이 어디 상관의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이던가. 그는 뼛속까지 공무원이다. 배설은 항명하는 대신 병을 핑계로 이순신을 피해 다녔다. 핑계도 가관이다. 뱃멀미였다. 적선 8척을 침몰시키며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수군 장수 입에서, 뱃멀미를 핑계로 미팅은 다음에 하자는 핑계가 나오다니...